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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elm Kiefer
안젤름 키퍼 (B.1945)
German painter and sculptor
비단 예술뿐 아니라 지적창작물에 관해서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죠.
애석하게도 제 입장에서는 작가를 모른채
작품에 빠지는건 거의 불가능해요.
여기서 '애석하다'고 한 이유는..
아무런 배경지식없이, 홀연히 나타난
어느 작품에 속된말로 '꽃혀서'
대체 이사람이 누구인지
그동안 어떤 작품을 만들어왔는지 알아가는
짜릿한 재미를 느낄수 없기 때문이예요.
대신 남다른 재능을 지닌듯한 신진작가들의
초기작품을 모으면서 이들의 미래를
상상하는걸로 또다른 재미를 느껴요.
대부분 내 맘에 드는 작품의
주인은 이미 유명해진 사람이고,
몇번을 이혼한 바람둥이인지
아이도 부모도 버린 냉혈한인지
평생 돈한푼 못벌어도
미련하게 그림만 그리다 갔는지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인생과 인성을
작품에서 배제하기란 참 어려워요.
요즘 좀 바껴야하나 싶긴 해요.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아무데서나 그림보다가 눈물콧물 질질하면
뭔가 unprofessional한거 같아서 =.=
암튼 현재까지 유일한
예외가 바로 안젤름 키퍼예요.
운좋게도 작가보다 작품을 먼저 알았어요
오래됐지만 그날의 느낌이 생생해요 :)
Anselm Kiefer 글쓰려고 유난히
뜸들였던거 눈치채셨죠.
지금도 그렇고 ㅋ
피카소는 방대한 작품(그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습작)의 양에 질려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는데,
안젤름 키퍼는 왜인지..
모르겠어요. 생각해봐야겠어요..
✿
신표현주의 新表現主義
✏Neo-Expressionism
다음으로 미루고
Occupations actions &
the Heroic Symbols photographs
먼저 볼께요.
The Heroic Symbols photographs
that document Anselm Kiefer’s
1969 performance Occupations(Besetzungen)
hold a distinctive place in his oeuvre.
☺ image courtesy ✏TATE
안젤름 키퍼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나기 2달전, 여전히 폭격이 난무하는 독일의
어느 병원 지하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미술교사였어요.
어릴때 폭탄에 망가져 폐허가된 집들을
수없이 보았지만, 묘하게도 그 상황을
도약과 전이의 단계로 느꼈다고 해요.
폐허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는 관점은
후에 작업을 전개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해요.
대학에서 법학과 로망스어를 배웠는데
도중에 미술로 전공을 바꿨어요.
그 이유는 후에 한 인터뷰에서 밝혔어요.
"법학과 과학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미처 해소할수 없었기에 예술을 선택했다.
예술적으로 활동하는 작은 영역안에
질서와 연관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내 삶을 견디는 것이다.
예술이 아니였다면 살지못했을것이다."
이어지는 답변이 흥미로웠어요.
"예술은 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대답에 대한 환상을 준다."
그의 스승으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바로 Joseph Beuys요셉 보이스예요.
안젤름키퍼는 Freiburg, Karlsruhe,
Düsseldorf 에서 미술을 공부했는데,
요셉보이스의 가르침을 받은것은
1970~1972년 Kunstakademie Düsseldorf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 시절이예요.
예전에 책에서 읽은기억을 더듬어보면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은 아니였고,
요셉보이스가 워낙 유명한 교수여서
따로 찾아가 가르침을 구한듯 해요.
요셉 보이스 관련 웃픈 일화를 소개할께요
Fluxus Festival of New Art,
Technical College Aachen, 20 July 1964
© Heinrich Riebesehl
a wooden cross towards the camera
and with his right arm extended
upwards in an ambiguous salute.
학생시절 Heinrich Riebesehl가 1964년
Fluxus Festival of New Art 기간에
6월20일 아헨 공과대학에서 열린 강연회
도중 요셉보이스를 찍은 사진이예요.
때는 1944년 히틀러암살 미수사건이
발생한지 20주년 되는 해였어요.
이날 몇몇 예술가들이 종전후 터부시되던
전범戰犯, Nazi propaganda나치 선전을
전면적인 화두로 삼아 청중들은
동요했고 불안이 감도는 상황이였어요.
예술가들은 fascism파시즘과 역사적
과오를 쉬쉬하기보다는 들추어내어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취지였지만,
오히려 청중을 도발하는 결과를 낳았어요.
요셉보이스가 등장하자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어요.
보이스가 손에 든 버너위에
펠트와 기름덩어리(퍼포먼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재예요) 를 녹이다가
사고로 미약한 폭발이 있었어요.
그순간 청중석에 있던 한남자(학생)가
달려들어 보이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저렇게 코피가 주르륵 =.=
하지만 보이스는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십자가를 높이 들며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 몇알을
관중석을 향해 던졌어요~
파시스트식 경례를 상기시키는 쭉뻗은 손은
독일 파시즘의 지나간 기억을,
흐르는 코피와 십자가는 고통받던 예수를,
청중을 향한 초콜릿은 구원을 상징해요.
이 퍼포먼스 이후로 보이스를 따르는
학생들이 더욱 많아졌어요.
1971년 안젤름 키퍼는 스튜디오를 설립한
Hornbach호른바흐로 이사하여 숲에서 살면서
일년에 세번쯤 뒤셀도르프로 가서
보이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함께 토론했어요.
정치행적(수차례 도전했는데 실패했어요)은
제외하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내비쳤어요.
보이스로부터 아주 많이 배웠으며,
가야할길을 단축시켜줬다고 밝힌적이 있어요.
키퍼는 인간, 우주, 문화, 문학, 철학,
과학, 연금술, 신화등의 주제를
고찰하여 예술로 승화시켜왔어요.
그 본격적 시작은 1969년 24살때,
과학, 연금술, 신화등의 주제를
고찰하여 예술로 승화시켜왔어요.
그 본격적 시작은 1969년 24살때,
학위를 수여받은후
사진과 행위예술로 출발해요.
유럽곳곳에서 때로는 군복차림으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Occupations 점령' 연작을
< Heroic Symbols > 라는
제목의 책(photo essay)을 통해 공개했어요.
(5년전 1964년, 보이스의 퍼포먼스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느낄수 있죠:)
사진과 행위예술로 출발해요.
유럽곳곳에서 때로는 군복차림으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Occupations 점령' 연작을
< Heroic Symbols > 라는
제목의 책(photo essay)을 통해 공개했어요.
(5년전 1964년, 보이스의 퍼포먼스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느낄수 있죠:)
키퍼의 재현행위는 그들의 광기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일환이였어요.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일환이였어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터부시하는 주제를 다룬데다
배경이되는 장소는 낭만적인 풍경
이외에도 2차대전이 발발했던 곳이예요.
강한 반향을 일으켰고 비판이 쏟아졌죠.
이외에도 2차대전이 발발했던 곳이예요.
강한 반향을 일으켰고 비판이 쏟아졌죠.
문화역사학자 Andreas Huyssen는
키퍼의 행위(performing, citing and embodying
the Sieg Heil gesture)에 대해 독일 나치당의
국가사회주의에 맞서는 예술가로서의
소명의식이 발현된것으로 보았어요.
Sieg Heil은 나치식 인사구호예요.
From German Sieg (victory) + Heil (hail)
같은해에 첫 개인전을 가졌어요.
(at Galerie am Kaiserplatz in Karlsruhe)
당시 공개한 사진을 감상하면서 마칠께요~
Anselm Kiefer
Heroic Symbols (Heroische Sinnbilder) 1969
Photograph, black and white, on paper
© Anselm Kiefer
Occupations (Besetzungen) 1969
© Anselm Kiefer
Heroic Symbols (Heroische Sinnbilder) 1969
© Anselm Kiefer
Anselm Kiefer
Occupations (Besetzungen) 1969
Collage, black and white photograph
© Anselm Kief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