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vard Munch
에드바르 뭉크
(Norwegianㅣ1863 -1944ㅣaged 80)
Movement: Expressionism, Symbolism
● 挪威表现主义画家(painter)
和 版画复制匠(printmaker)
● 代表作品: <呐喊The Scream 절규>
<生命之舞The Dance of Life 생의 춤>
<卡尔约翰街的夜晚 Evening on Karl Johan
<卡尔约翰街的夜晚 Evening on Karl Johan
카를 요한의 저녁>
<Girl Combing Her Hair 1892>
빗질하는 소녀
Expressionism, oil on canvas, 91.4 x 72.3 cm
Rasmus Meyer Collection, Bergen, Norway
Expressionism, oil on canvas, 91.4 x 72.3 cm
Rasmus Meyer Collection, Bergen, Norway
라스무스 마이어 컬렉션, 베르겐
I build a kind of wall between myself and
the model so that I can paint in peace behind it.
Otherwise, she might say something
that confuses and distracts me.
- Edvard Munch
Tøyengata 53 PO Box 2812 Tøyen N-0608
자신의 컬렉션이 팔리지않고 전시되길
바라던 뭉크는 유증으로 방대한 양의작품을 오슬로시에 남기고 떠났어요.
This amounts to over 1,200 paintings,
18,000 prints, six sculptures, as well as
500 plates, 2,240 books,
and various other items.
(nearly 28 000 works of art)
여동생 잉게르(Inger Munch)가 기증한것과
복제품을 교환하여 확보한 작품들을 포함하면
뭉크전작품의 절반이상을 소장하고 있어요.
(The museum now has in its permanent
collection well over half of the artist's
entire production of paintings and
at least one copy of all his prints.)
오슬로 시는 1946년 개관을 결정한후
1951년 착공하여 뭉크탄생 100주년
(Munch's 100th birthday/1963.5.29)이
되는 해에 미술관을 대중에 공개했어요.
1994년에는 사망 50주년을 기리는
확장및 보수공사가 이뤄졌어요.
(the 50th anniversary of Munch's death)
현재 500여점을 상설전시하고 있어요.
CATALOGUE RAISONNÉ- PAINTINGS
CATALOGUE RAISONNÉ- PRINTS
●Childhood
뭉크는 노르웨이남부 작은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의학박사 아버지(Christian Munch)는 자기나이의
절반밖에 안되는 어린여자와 결혼했는데,
뭉크와 누나(Johanne Sophie)가
이 엄마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해요:)
동생은 3명 있었어요.
(Peter Andreas,Laura Catherine, Inger Marie)
1864년 아버지가 발령받은 의료기관이
있는 Christiania(Oslo)로 이사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엄마 (in 1868)와
가장 좋아하던 누나(in 1877)를
모두 결핵(tuberculosis)으로 잃게돼요.
뭉크도 몸이 약해서 늘 질병에 시달렸고
학교를 가지못할때는 이모와
아버지로부터 가정교습을 받았어요.
또 집안사정이 좋지않아 저렴한집을
찾아 이사도 자주다녀야 했어요.
뭉크는 힘들때면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By his teens, art dominated Munch's interests.)
당시 집안내부나 야외풍경, 약병,그림도구
등을 그린 초기작이 남아있어요.
(drawings, watercolors)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아버지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어요.
게다가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을때마다
귀신얘기와 함께, 죽은 엄마가 내려다보며
한탄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The oppressive religious milieu , plus
Edvard's poor health and the vivid ghost stories,
helped inspire his macabre visions and
nightmares; the boy felt that death
was constantly advancing on him.
기독교신자이던 아버지의 병적인 신앙심과
신경질적 기질은,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던
홀아비의 가정적인 면모를 무색하게 할만큼
뭉크를 옭아매고 있었어요.
"My father was temperamentally
nervous and obsessively religious—
to the point of psychoneurosis.
From him I inherited the seeds of madness.
The angels of fear, sorrow, and death stood by
my side since the day I was born."
-Edvard Munch
엄마와 누나가 죽은이후 여동생(Laura)은
8살때 정신병 진단을 받아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했어요.
1895년 유일하게 결혼한 남동생
( Andreas ) 마저도 결혼식 5달후
서른의 나이로 사망했어요.
아버지도 결국 우을증에
시달리다 1889년 사망했어요...
이렇게 차례로 떠나는 가족을 지켜보며
슬픔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뭉크는
항상 죽음이 자기곁을 떠돈다고 믿었어요.
작품에도 외로움, 쓸쓸함, 슬픔,
존재론적 불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요...
그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이 많지만:)
우선은 인상주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밝은 느낌의 작품 2점을 소개할께요~
뭉크는 노르웨이남부 작은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의학박사 아버지(Christian Munch)는 자기나이의
절반밖에 안되는 어린여자와 결혼했는데,
뭉크와 누나(Johanne Sophie)가
이 엄마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해요:)
동생은 3명 있었어요.
(Peter Andreas,Laura Catherine, Inger Marie)
1864년 아버지가 발령받은 의료기관이
있는 Christiania(Oslo)로 이사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엄마 (in 1868)와
가장 좋아하던 누나(in 1877)를
모두 결핵(tuberculosis)으로 잃게돼요.
뭉크도 몸이 약해서 늘 질병에 시달렸고
학교를 가지못할때는 이모와
아버지로부터 가정교습을 받았어요.
또 집안사정이 좋지않아 저렴한집을
찾아 이사도 자주다녀야 했어요.
뭉크는 힘들때면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By his teens, art dominated Munch's interests.)
당시 집안내부나 야외풍경, 약병,그림도구
등을 그린 초기작이 남아있어요.
(drawings, watercolors)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아버지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어요.
게다가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을때마다
귀신얘기와 함께, 죽은 엄마가 내려다보며
한탄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The oppressive religious milieu , plus
Edvard's poor health and the vivid ghost stories,
helped inspire his macabre visions and
nightmares; the boy felt that death
was constantly advancing on him.
기독교신자이던 아버지의 병적인 신앙심과
신경질적 기질은,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던
홀아비의 가정적인 면모를 무색하게 할만큼
뭉크를 옭아매고 있었어요.
"My father was temperamentally
nervous and obsessively religious—
to the point of psychoneurosis.
From him I inherited the seeds of madness.
The angels of fear, sorrow, and death stood by
my side since the day I was born."
-Edvard Munch
8살때 정신병 진단을 받아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했어요.
1895년 유일하게 결혼한 남동생
( Andreas ) 마저도 결혼식 5달후
서른의 나이로 사망했어요.
아버지도 결국 우을증에
시달리다 1889년 사망했어요...
이렇게 차례로 떠나는 가족을 지켜보며
슬픔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뭉크는
항상 죽음이 자기곁을 떠돈다고 믿었어요.
작품에도 외로움, 쓸쓸함, 슬픔,
존재론적 불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요...
그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이 많지만:)
우선은 인상주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밝은 느낌의 작품 2점을 소개할께요~
<Spring Day On Karl Johan Street 1890>
카를 요한의 봄날/ Impressionism
oil on canvas 100 x 80 cm
Bergen Billedgalleri, Bergen, Norway
빌레드 미술관, 베르겐
1889년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에서
작품을 110점이나 선보인 첫개인전을 가졌어요.
이를 계기로 국비장학금도 받았는데...
11월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해요.
(뭉크도 심각한 병에 걸렸다 회복한 1889년은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예요.
다른작품 설명때 다시 언급할께요:)
파리 레옹 보나의 아틀리에에 들어갔지만
(Leon Floretin Bonnat /1833~1922)
2달만에 그만두고 파리근교
생클루( Saint-Cloud)로 이사를 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자연주의'
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해요.
세부를 정확히 묘사,질감을 사진처럼 재현,
즉 보는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려는 경향.
오른쪽은 그랜드호텔에서부터 성에 이르는
크리스티아니아 중심가를 묘사한 거예요.
카를 요한 거리는 중산층의 산책로였다고 해요.
길을 따라 늘어선 파란지붕의 건물과
평행선상에 줄지어 걷는 인파가
멀리 중심을 향해 빨려들어가는 듯해요.
반면 중심을 가르는 여인의 붉은 우산으로
(빨강,파랑) 대조적인 색을 병치하는
대위적 기법을 사용했어요.
그 옆으로 모자쓴 어린아이 세명이
뛰어들어와 경쾌한 느낌을 더하고 있어요.
카를 요한의 봄날/ Impressionism
oil on canvas 100 x 80 cm
Bergen Billedgalleri, Bergen, Norway
빌레드 미술관, 베르겐
1889년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에서
작품을 110점이나 선보인 첫개인전을 가졌어요.
이를 계기로 국비장학금도 받았는데...
11월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해요.
(뭉크도 심각한 병에 걸렸다 회복한 1889년은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예요.
다른작품 설명때 다시 언급할께요:)
파리 레옹 보나의 아틀리에에 들어갔지만
(Leon Floretin Bonnat /1833~1922)
2달만에 그만두고 파리근교
생클루( Saint-Cloud)로 이사를 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자연주의'
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해요.
이때는 특히 일본의 목판화와 로트렉,
고갱,고흐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어요.
* 자연주의 自然主義 , naturalism:
대상을 양식화, 관념화 하지않고 세부를 정확히 묘사,질감을 사진처럼 재현,
즉 보는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려는 경향.
1990년 5월 노르웨이에 일시귀국해
오슬로로 돌아온 뭉크는 빛으로 가득한
'카를 요한의 봄날'을 완성했어요.오른쪽은 그랜드호텔에서부터 성에 이르는
크리스티아니아 중심가를 묘사한 거예요.
카를 요한 거리는 중산층의 산책로였다고 해요.
길을 따라 늘어선 파란지붕의 건물과
평행선상에 줄지어 걷는 인파가
멀리 중심을 향해 빨려들어가는 듯해요.
반면 중심을 가르는 여인의 붉은 우산으로
(빨강,파랑) 대조적인 색을 병치하는
대위적 기법을 사용했어요.
그 옆으로 모자쓴 어린아이 세명이
뛰어들어와 경쾌한 느낌을 더하고 있어요.
<Street Lafayette 1891>
Rue Lafayette 라파예트 거리
Impressionism
oil on canva 73 x 92 cm
National Gallery, Oslo
Rue Lafayette 라파예트 거리
Impressionism
oil on canva 73 x 92 cm
National Gallery, Oslo
1891년 1월 니스에 있던 뭉크는
류머티즘 열에서 회복한후 ,4월 파리로 돌아와
라파예트 거리에 작은 방을 얻었어요.
그곳 발코니에 기대어 오스만 대로(Boulevard
Haussmann)를 내려다 본 전망인듯 해요.
오슬로에 돌아간 5월, 이작품을 완성했어요.
대각선을 따라 관찰하는 시선처리는
다른작품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구도예요.
인상파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하기도 해요.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죠:)
점묘법을 연상시키는 짧은 평행선들로
부산하고 역동적인 일상을 표현하고 있어요.
뭉크 스스로도 인상주의 시절이
잠시 부활한것이라 고백했던 작품이예요.
그의 말대로 이후로는 찾아보기 힘든
밝은 느낌의 작품이라 더 애틋해져요.
<View Over The Rover At St.Cloud 1890>
Impressionism, oil on canvas, 38 x 46.5 cm
The Munch Museum
The Munch Museum
<Tavern In St. Cloud 1890>
Expressionism, pastel on paper, 64 x 48 cm
Norske Selskab, Oslo, Norway
To Be Continu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