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6.

波纳尔 Pierre Bonnard 피에르 보나르 (1. Les Nabis,Japonism)



Pierre Bonnard
 피에르 보나르 
(French ㅣ1867- 1947ㅣaged 79)
Movement: Post-Impressionism


波纳尔是纳比派나비파代表画家。
波纳尔以色彩而闻名,
被誉为20世纪最伟大的色彩画家之一。



<Self Portrait  1889>
 Post-Impressionism
 oil on panel, 21.5 x 15.8 cm
Private Collection


흔히 앙리마티스를 원색의 마술사라고 하죠.
(Henri Matisse, 1869- 1954)
보나르도 일생을 색채에 사로잡혀,
의 조화와 절묘한 배합을 위해
끈질기게 탐구하고 분석했던 화가예요.
색채란 예술적 표현의 가장 매력적이고
강력한 수단이자 매개체라고 생각했어요.

재밌는점은 둘이 1905년경 만나 평생동안
 서로를 존중하며 우정을 나눈 사이였어요. 
(마티스는 말기에 병원에 누워서 색종이
콜라주하는 사진이 워낙 유명하고,
보나르는 위 작품속 22살의 젊은 초상화가
제일 많이 알려진 모습이라서...
저는 친구라니까 좀 어색하게 느껴지네요:)





< Pierre Bonnard >
<Study For Afternoon In The Garden  1891>
Post-Impressionism, 45.4 x 37.8 cm
 Private Collection



선천적으로 자유를 갈망하고,독립적인 기질을
타고난 보나르는 이미 스무살때 자신은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을것임을 선언했고,
그 다짐을 몸소 시연했어요.
무조건 배척한건 아니고 동료들에게서
배울만한것은 취하면서 독자적인 예술관을
고수한거예요. 일례로, 다음에 언급할
나비파 친구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어요.




보나르에게는 색채, 색조, 균형, 구성,선도 등이
평생 일관된 관심사였으며, 일상적인 소재
 풍경, 집 내부, 정물, 누드, 초상화등을
항상 동시에 진행했고 완성이 더딘편이였어요.
(누드를 강조한 이유는 드가처럼 워낙 여인
 누드화를 많이 남긴데다, 회화에 욕조
처음 등장시킨 화가가 보나르라고 해요.)




마음이 이끌리는데로 그리다가 새로운
모티프를 발견하면 중단하고 옮겨가기를 반복,
천천히 오래 검토하다가도 돌연 속도를 내고,
다시 그림으로부터 시간과 거리를 두었어요.
즉,  그림을 완성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발 물러나 내면적 성찰을 거친후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과 대면하고자 했어요.
좀 더 다양하게 해석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였어요.

따라서 피카소를 청색시대나 장미시대등
연대별 뚜렷한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보나르는 구분이 쉽지 않아요.






프랑스 소설가이자 비평가 앙드레지드
(Andre Gide,1869-1951)는 보나르에
 대해 '변화하고, 탐구하고 창의적인,
그러나 결코 침울하거나 우울한 상태에
빠져들지 않는 화가'라고 평했어요.

그의 작품에는 위트와 유머가 녹아있어요.
강아지, 아이들, 여인도 많이 보이고
화가 본인도 자주 등장해요. 가끔 아주 작게
그린것도 있는데 발견하면 좀 웃겨요:)







<Snowballs 1891>
 Japonism/ flower painting
oil on canvas,  41 x 32 cm
Private Collection




  Les Nabis 나비파



보나르는 1885년 대입시험을 치르고
아버지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하여
1888년 학사학위도 받았어요.
근데 87년부터 프랑스 쥘리앙 아카데미
(Académie Julian)의 수업도 들었어요.

당시 그림을 천직으로 생각했던건 아니고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동경했어요.
  무미건조한 법조인의 삶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고 고백했어요.




나비파의 발단은 쥘리앙의 동료인
폴 세뤼지에Paul Sérusier가 만든 모임이며
친구들과 보나르가 합류하게 된거예요.

Les Nabis were a group of
Post-Impressionist avant-garde artists
 who set the pace for fine arts and
graphic arts in France in the 1890s.

Les Nabis originated as a rebellious
group of young student artists who
 banded together at the Académie Julian.
 Paul Sérusier galvanized Les Nabis, and
 provided the name and disseminated the
 example of Paul Gauguin among them.




그룹의 명칭은 시인 앙리 카잘리스가
 '예언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Nabi 나비에서
 따왔어요. 젊은 일원들은 스스로 
예술의 선구자, (인상파의) 전수자 傳受者,
(특히 고갱 예술의) 선지자 先知者
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해있었어요.

The term was coined by the poet
Henri Cazalis . Les Nabis regarded themselves
as initiates, and used a private vocabulary.







나비파 화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기회에 할께요. 구성원들(Members of
the Nabis group and associated artists)
각자 작품 링크해놨으니 참고하세요 ~

▷Pierre Bonnard피에르 보나르(1867–1947)
▶Paul Sérusier폴 세뤼지에(1864–1927)
▷Édouard Vuillard에두아르 뷔야르(1868–1940)
▷Maurice Denis 모리스데니스(1870–1943)
▷Maxime Dethomas막심 데토마(1869–1929)
▷Meyer de Haan마이어 드 한(1852–1895)
▷Rene Georges Hermann-Paul(1864–1940)
▷Georges Lacombe조르주 라콩브(1868–1916)
▷Aristide Maillol아리스티드 마욜(1861–1944)
▷Ker-Xavier Roussel 루셀(1867–1944)
▷Félix Vallotton펠릭스 발로통(1865–1925)
▷Paul Ranson폴 랑송(1864–1909)
▷József Rippl-Rónai (1861–1927)
▷Jan Verkade (1868–1946)
▷Henri-Gabriel Ibels (1867–1936)





<Two Poodles 1891> 
 Japonism/ animal painting
oil on canvas, 39.5 x 36.3 cm
 Southampton City Art Gallery, Hampshire, UK




 Japonism/Japonisme 자포니즘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
지칭해요. 일본문화에의 동경은 예술문화계
전반에 걸쳐 넓고 지속적으로 나타났어요.
용어(프랑스어)는 Jules Claretie가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어요.

Japonism (first used by Jules Claretie
in his book L’Art Francais en 1872) is
the influence of Japanese art, fashion
 and aesthetics on Western culture.





The term is used particularly to refer to
 Japanese influence on European art, 
especially in impressionism.

일본문화는 특히 마네,모네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느꼈던 반고흐는 
테오와 나눈편지에서 자신의 전작품은 
일본예술에 기반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어요.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무척 인상적이예요.
▷Gustave Léonard de Jonghe








<Woman In A Green Dress In A Garden 1892>
Post-Impressionism
oil on canvas,  37.8 x 45.8 cm
Private Collection



색조의 얼룩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한
물결이 그림이 된다고 생각했던 보나르는
얼룩의 크기를 조정함으로써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표현할수 있다고 믿었어요.
화구상자를 들고 다니면서  암녹색의 숲,
푸른색 하늘, 노란색 모래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타냈어요.




<Poster Advertising France Champagne 1891>
Japonism/ advertisement
 lithography, 80 x 60 cm
Bibliothèque Nationale, Paris, France



변호사가 된 1890년 내키진 않지만
매일 검사국에  출근해야 했어요.
당시 법조계 사람들 데생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 재밌고 귀엽게 그렸어요.

당당히 전업화가를 선언한건 1891년
위 포스트로 100프랑을 벌면서부터예요.
프랑스 상파뉴의 광고지 도안 제작의뢰를
받았다는 편지에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셨어요.

흥에 겨운듯한 풍만한 몸매의 여인이
한손엔 거품이 넘치는 술잔을 들고,
다른손의 부채는 상표명을 강조하고 있어요.



 Henri de Toulouse-Lautrec 
앙리 툴루즈 로트렉(1864-1901)

위 광고포스터가 예상치않은 관심과 인기를
끌며 대성공을 거두자, 물랭루즈의 광고를
전담하고 있던 로트렉과 경쟁관계에
놓이게 됐어요. 툴루즈 로트렉도
독창적이고 신선한 표현에 관심을 보였고
성격좋은 보나르와 금새 친해졌어요.

 머지않아 둘의 경쟁은 보나르가 회화로
되돌아가면서 마무리됐어요.  사실
광고예술로 로트렉을 넘어설순 없었어요:)





<The White Cat 1894>
Japonism
oil on canvas



보나르 1편에서는 이것저것 산만하게
덧붙였네요.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보나르를
 회상하기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눈을 가진
너그럽기 한이 없는 사람이였다고
하니까.. 저도 못했던 용어설명을
이 공간을 빌어서 했어요 :)

근데 아무리 유명한 화가들이 그를
찬미했더라도 악평이 없을수는 없죠.
보나르의 사망직후 오랑주리미술관
Musée de l'Orangerie에서 거의 전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가 있었어요.
비평지에 기사를 쓴 크리스티앙 제르보
(Christian ZERVOS, 1889-1970)는
"졸작이 없는만큼 걸작도 없는 화가"
라는 평을 남겼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보나르는 소심하게
(나쁜말이 아니라;; 대범하지 않아서)
지나간 작품을 재터치하길 좋아했고,
천성도 격정,흥분,갈등에 휩싸이지 않으니
 강력한 무언가가 부족하단 거였어요.


비록 비범하지 않더라도,
 색의 얼룩으로 빛과 공기의 진동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때로는
유머와 위트있게 표현한
그의 작품들이 참 좋아요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