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0.

安迪·沃霍尔/Andy Warhol 앤디워홀 (2.사치갤러리展)






2015 앤디워홀 라이브展
✏Andy Warhol (1) 에 이어,
1985년 사치갤러리에 전시되었던
앤디워홀의 작품을 감상할께요.












image courtesy ✏Saatchi Gallery




















✏Saatchi Gallery(1) 사치갤러리는
1985년 떠들썩한 홍보없이
조용히 대중에게 다가갔어요.
사람들은 입소문을 전해듣고 찾아왔죠.

전문큐레이터의 도움을 받긴했지만,
 찰스사치가 소장품중 선별한 작품을
단체전의 형식으로 선보였어요.
그는 작품진열에도 공을 들였어요.

우선 작품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바닥에서 약1피트 떨어진 눈높이에
 작품 외적요소를 제거하고
각각을 독립적으로 배치하는
전시원칙을 고수했죠.

(참고로 19세기 파리살롱전은 그림간의
간격을 줄여 벽전체를 덮는 방식이였어요)
















✏Andy Warhol<Mao>















예술가 Kenneth Baker 케네스베이커는
사치갤러리에 처음 들어섰을때
부차적인건 눈에 들어오지않고
 미술작품 자체로만 가득찬 공간, 
국가를 초월한 국제적 미술세계로 
들어선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찰스가 첫 전시를 위해 선택한작가는
저드,마든,톰블리 그리고 워홀이였어요.
네명 모두 미니멀과 팝아트를 선보인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Donald Judd   Brice Marden   
Cy Twombly   Andy Warhol   



85년당시 테이트갤러리는
앤디워홀 작품을 2점 소장한반면
찰스사치는 15점이나 갖고 있었어요.
국공립 갤러리들은 경제적 공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은 풍요하고 공공은 너저분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돌았어요 ^^;











30년이 흐른 지금은
 한공간에 존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워홀의 주요작품들이 모여있어요 :)


















< Triple Elvis 1962 > 
Acrylic silkscreened on canvas
208.3 x 299.7 cm


Elvis Presley는 앤디워홀이 작품을 위해
자주선택한 유명인사 중 한사람이예요.
2번 중첩되는✏Double Elvis
 8번 중첩되는✏Eight Elvises 

8개의 엘비스는 워홀작품의 공개된 
거래가격중 두번째로 기록되고 있어요.
2008년 개인간 1억달러에 
거래된것으로 보도되었어요.
(최고가는 Silver Car Crash예요)








워홀은 서있는 엘비스 외에도
그의 얼굴이미지만 사용하기도 했어요. 
암튼 국내에 출간된 한 서적에 따르면
 엘비스작품 50점을 하루만에 만들었다고 해요.
그 날 한 개인의 역량을 
현재의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한다면 
가히 상상이 안되는 천문학적 수치이죠;;;










이토록 단시간에 많은작품이 탄생한것은 
그가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Silk Screen실크스크린 방식을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였어요.
실물크기의 전신이미지를 은색바탕에 
여러차례 프린트한,
쉽게말하면 그냥기계로 찍어낸거예요:D
(제작방식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작품을 모아 자세히 설명할께요)









워홀은 60년대초부터 TV,상품광고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흔히 접할수 있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Pop Art 팝아트를 선보였어요.
이미지를 연속,중첩하는 모티프도
이때부터 평생 즐겨사용 했어요.
더불어 대량생산라인에서 찍어낸듯한 
강렬한 효과를 원했어요. 







이처럼 의도적으로 
하위문화(subculture,下位文化)를
고급예술의 소재로 등장시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구분하던 
 Elitism엘리트주의를 공격하고
이분법적 사고를 불식시키려한 점은,
더러는 싸구려이미지 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한 
중요한 요소중 하나예요.












Elvis In Flaming Star 1960









Triple Elvis에 사용한 이미지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한 영화
<Flaming Star>의 한장면으로, 광고용으로 
여기저기 흩뿌려진 홍보사진이예요. 

63년당시 엘비스의 나이는 
28살이였지만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았어요.
그런 엘비스가 전형적 미국의 영웅을 
대변하는 카우보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왠지 엉거주춤.. 어색한느낌도 있죠.

이는 대중문화에 대해 찬양과 비판의 
입장을 동시에 견지했던 워홀이 
이중적면모가 드러나는 이미지를 
취사선택한것으로 이해돼기도 해요.








한편 대중적스타나 유명인사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묘사하거나 
임의적으로 색채를 가미한 작품이 많은것은,
물론 워홀이 아름다운 사람이나
 스타를 동경한 이유도 있지만,
유명인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얼굴을 
초상화로 남기기위해 거금을
 들이면서 부탁하기도 했어요. 














미술관에 영구소장된 작품을 포함하여
워홀작품의 거래와 소장기록을 살펴보면, 
자주보이는 낯익은 이름들이 있어요.





1. Bruno Bischofberger 
(art dealer and gallerist)
 현대미술계의 큰손이자 앤디워홀을
소개할때 빠질수 없는 인물이예요.
Galerie Bruno Bischofberger
✏ 브루노 비숍벨거 갤러리
Weissenrainstrasse 1,
8708 Maennedorf , Switzerland
Tel +41 44 250 77 77





브루노 비숍벨거는 1963년 스위스 취리히
Zurich에 처음 갤러리를 열고,
1965년 Andy Warhol앤디워홀,
Roy Lichtenstein로이 리히텐슈타인,
Robert Rauschenberg 로버트 라우센버그 ,
Jasper Johns재스퍼 존스,
Tom Wesselmann 탐 웨슬만의
작품을 전시했어요.
또 이듬해 독일화가 Gerhard Richter
게르하르 리히터를 처음으로
해외에 소개한 장본인이예요.
(모두 현대미술의 거장이 됐죠:)







1968년 워홀과 계약(first right of refusal)을
체결한 비숍벨거는 전시회를 열고 컬렉터들과의
연결을 추진해, 그림(ex.Mao's)은 물론
영화( L‘Amour)나 잡지( Interview Magazine)
제작을 후원했어요.
이런관계는 워홀이 사망하는
1987년까지 계속되었어요.






그의 갤러리는 특히 80년대
Neo-Expressionist신표현주의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유명해졌어요.
그중 Jean-Michel Basquiat
장미셸 바스키아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준
딜러이기도 하며, 82년 바스키아를 워홀에게
 소개한 사람도 비숍벨거예요.











2.Gian Enzo Sperone(Italian art dealer)는  
 Sperone Westwater Fischer의 설립자예요.

1975년에 Konrad Fischer(German art dealer),
Angela Westwater와 함께
뉴욕 소호에 문을 연 갤러리는 82년 
✏Sperone Westwater Gallery로 개명하고
확장이전하면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어요.











이외에도  
Leo Castelli Gallery, New York
Eleanor Ward, New York
Daros Collection, Zurich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는 
주요컬렉터들의 손을 거쳤는데, 
나머지는 작품소개와 함께
3편에서 이어갈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