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1.

巴勃罗·毕加索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5. the first major exhibition)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Spanishㅣ1881–1973ㅣaged 91)
Movement: Cubism, Surrealism






  Period   
Early Years 
Blue Period(1901–1904)
Rose Period(1904–1906)
African Period(1907–1909)
*Cubist Period 
Analytic Cubism(1909–1912)
Synthetic Cubism(1912–1919)
Neoclassicist & Surrealist Period 
Later Years (-1973)






1901 was a pivotal year for the young Picasso.
피카소는 1901년 19살 어린나이에 
볼라르의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어요. 
1901년은 (2.비둘기)편에서도 언급했었죠.
오늘글을 그의 성공이념에 관한거라서..
청색시대의 개막에 관련한건
다른글로 또 써야할꺼 같아요 ^^;







Picasso exhibited in Paris
On June 24, 1901 
- his debut solo exhibition
- the first major exhibition

- at a gallery on Paris’ rue Lafitte, 
a street known for its prestigious art galleries. 
-with the influential dealer Ambroise Vollard.


-The 75(64) works displayed. 
 (moody, representational paintings)










1900년 처음 파리를 방문했던 피카소는
마드리드로 돌아가 이듬해 전시회에서
 선보일 100여점의 그림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어요. (he had already 
produced hundreds of paintings.)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천천히 할께요..
우선 그는 20세기초 당시 인상파 전문 
화상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으며,
고갱,세잔등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어요.


 여러가지 이점을 간파한 볼라르는 
작가로부터 작품을 직접사는것을 선호해
특히 르누아르의 저택을 자주 드나들었어요.
 20세기 신예작가들을 발굴해 현대미술시장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점을 인정받고 있어요.






볼라르의 획기적인 기획으로 
성공을 거둔 1985년 세잔의 개인전은 
1903년 '곰의가죽'을 결성한 
앙드레 르벨 André Level 이 본격적으로 
미술품수집 사업에 뛰어드는데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르벨도 죽기전까지 피카소와 우정을 
나눈 인물인데 다음편에 소개할께요:)







 볼라르 갤러리 입장에서 볼때,
뒤늦게 말년이나 사후에 시장에서 빛을 
보기시작한 후기인상파 화가들 
 특히 작품가격이 치솟은 고갱,세잔에 비하면
피카소나 마티스는 이제 활동을 시작한 
차세대 작가들이였어요.

 1900년만 해도 팔리지 않던
고갱,고흐,로트렉의 작품이, 6년후 경매에서
인상파보다 더 인기를 끌며 비싼값에 팔렸어요.
다시말해 후기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평가가 급진전을 보일때, 피카소는
이들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이였어요.






(인상파 화가들이 비교적 장수하면서 
생전 명예와 부를 이룬 반면,
후기인상파화가들은 인상파가 전성기를
구가할때 요절하는 바람에
인상파의 그늘에 가려 오랜기간 
저평가 받았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해요.

● 인상파 :드가(1917년,83세) 
르누아르(1919년,78세) 모네(1926년,86세)
● 후기 인상파:  
쇠라(1891년 31세) 로트렉(1901년 36세) 
고흐(1890년 38세) 고갱(1903년 54세) 

사망나이를 비교하면 이런 주장도 
설득력있어 보여요 )








그동안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지만 
투자를 꺼리던 분위기였는데
시장의 동향을 파악한 눈치빠른 수집가들이 
젊은 작가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볼라르도 고갱이 사망하고,
세잔의 건강이 악화되어 
새로운 수입원을 물색해야하는 상황이였어요.






피카소를 소개받은 볼라르는 
작품을 본후 곧바로 개인전을 열기로 했어요.
다행히 호평을 받았고 판매결과도 좋았어요.


From street scenes to landscapes, 
prostitutes to society ladies, 
Picasso’s subjects were diverse, and
 the young artist received a favorable review 
from the few Paris art critics who saw the show. 













<Harlequin Leaning 1901>
 Arlequin accoude
Post-Impressionism, Blue Period
 oil on canvas, 61.3 x 82.8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Y



<Absinthe Drinker, 1901>
Oil on canvas, 73 x 54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Woman Dressed In Blue 1901>
Femme en bleu
Post-Impressionism
oil on canvas, 101 x 133.5 cm



< French Can-Can, 1901>
oil on board, Private Collection




<Nana 1901> 
Post-Impressionism, Blue Period
oil on cardboard, 61 x 104.5 cm
 Musée Picasso, Paris, France



<Head Of Woman 1901>
 Tete de femme
Impressionism
oil on cardboard, 31.5 x 46.7 cm


Femme en bleu
Post-Impressionism
oil on canvas, 101 x 133.5 cm



<Pierrot And Colombina 1900>
 Pierrot et Colombine
Post-Impressionism, Symbolism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피카소는 초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살롱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어요.
아직 불어가 미숙했고, 외국인 신분이며
본능적으로 조직에 대한 불신이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팔아 돈을 벌기위해서
화상에의 의존은 불가피한 일이였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당시에는
팔기위해 그림을 그렸다'라고 고백했어요.
피카소의 파리시절 최초의 화상은
베르트 베유(Berthe Weill, 1865–1951)예요.
1901년 작품을 화랑에 가져갔는데
그녀가 돈이 없어... 그냥 그림을 두고왔고,
1년이 흘러 전시에 들른 르벨이
파스텔화 2점을 사게 된거예요:)







피카소는 그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였던
화상 칸바일러 (D. H. Kahnweiler)에게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
는 말을 한적이 있어요.
부자들이 겪는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빈자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미예요.
즉 그의 목표는 삶과 예술을
 자유롭게 해줄 돈을 버는 것이였어요.







이를 위해 프랑스 정착 직후부터
 뛰어난 사교술을 발휘했어요.
1901년 볼라르화랑의 첫개인전에
선보인 작품들도 첫눈에
후기 인상파 화가를 연상케 해요.


These works show the young painter
 taking on and transforming the styles and
 subjects of major modern artists of the age,
such as Van Gogh, Degas and Toulouse-Lautrec.








피카소는 특히 전시회 개최를 도와준사람들,
호평을 아끼지않은 평론가와 화상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서 선물을 자주 했어요.
특히 평론가친구들보다 화상에게 선물할
초상화에 몇달씩 공을 들였다고 해요 :)

대표적으로 클로비스 사고(Clovis Sagot),
빌헬름 우데(Wilhelm Uhde), 볼라르,
칸바일러가 있는데 이들의 초상화는
다음에 한꺼번에 감상할께요.






볼라르는 능력있는 사업가에
첫 개인전을 열어준 사람이지만
사실 피카소와 전속계약을 맺은적은 없어요.
 작품을 대량으로 구입한건 단한번뿐이였고
피카소가 선물한 초상화도 몇년후
팔았다고 하니 사실상 그의 후원을
받는데 성공하지 못한거죠.
(볼라르는 사실주의를 선호했는데
선물받은건 큐비즘작품이였어요)

하지만 볼라르의 경영마인드는
국제무대에 첫걸음을 내디딘 피카소가
시장이 무엇인지, 그리고 명성을 얻기위해
평단의 인정과 더불어 상업적 성공이
중요함을 제대로 알려준듯해요.






피카소는 첫개인전을 개최하고
40년이 흐른 후에도 당시 동거하던 애인
프랑수아즈 질로 francoise gilot에게
'나는 여전히 볼라르의 전략대로 움직인다.'
는 말을 했다고 해요 :)











<Self-Portrait 1901>
Expressionism
oil on canvas, 60.5 x 73.5 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1900>
 Realism, charcoal on paper
16.5 x 22.5 cm
Museu Picasso, Barcelona, Spain


<Portrait Of Josep Cardona 1899>
Impressionism
 oil on canvas, 63 x 100 cm



<Portrait Of Bibi La Purée 1901>
Impressionism


<Portrait Of Gustave Coquiot 1901>
Post-Impressionism
oil on canvas, 81 x 100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Portrait Of Gustave Coquiot 1901>
Impressionism, oil on cardboard


<Portrait Of Mateu Fernandez De Soto 1901>
Portrait de Mateu Fernandez de Soto
 Post-Impressionism, Oil on canvas
37 x 45 cm( 61,3 x 46,5 cm)


<Portrait Of Petrus Manach 1901>
Post-Impressionism
 oil on canvas,  67.5 x 100.5 cm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