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

维拉斯凯斯 Velázquez 벨라스케스 (1.Francisco Pacheco)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디에고 로드리게즈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
( Spanishㅣ1599-1660 ㅣaged 61 )
Movement: Baroque



The leading artist in the court of King Philip IV.
 文艺复兴르네상스后期西班牙最伟大的画家,
对后来的画家尤其是印象派인상파影响很大 .



<An Old Woman Cooking Eggs 1618>
계란부치는 노파
Oil on canvas, 101 x 120 cm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너무 화려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플랑드르
(Flandre/Vlaanderen) 화풍 , 유행을 쫒던 
동시대 화가들사이에서는 전례를 찾아볼수
 없던 작품으로 인정받는 초기 대표작이예요.

빛의 작용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탐구하고 이해한 결과도 엿볼수 있어요. 
이는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과 연관이 깊어요.

배경은 매우 어둡지만 사물은 입체감을 위해
검은색사용을 최대한 자제했어요. 형체표면을
구성하는 독립적 개성은 순색을 이용함으로써 ,
밝은부분은 백색을 두텁게 올려 강조했어요.






There is a serious, meditative quality about 
the woman's figure, and the boy with the melon 
under his arm and a carafe of wine in his hand 
looks out of the picture at us with comparable
 gravity. The contrast of youth and age conveys 
the transience of life, and the egg in the woman's 
hand suggests associations, familiar at the time,
 with the mutability of all earthly matter
 and with another life beyond the grave.






아카데미즘에 세뇌되었을법도 한데, 청년 
벨라스케스는 다른화파(사실주의,자연주의)에 
관심을 두거나,서민과 일상을 소재삼는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어요.  타인의 취향보다 
개인의 기호를 우선하는 단호한 성격이였어요.
(후기로 갈수록 소심하기로 소문났고
매우 출세지향적이였다는 설명이 많아요.
정치색을 띈 초상화제작을 일례로 들수있어요)



극사실주의에 다가간듯 각각의 요소에 
입체감과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에 감탄한
스승 파체코는 예술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격찬했고,정물과 초상화의 완벽한 재현 
가능성을 열어보인 모범례이라며 기뻐했어요.
(애제자인데다 장인으로써 과장한점도 
있으니까 그가 편찬한 저서나 
기술한 내용은 감안하고 보셔야해요 :)





<Breakfast 1618> 
Oil on canvas, 109 x 102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벨라스케스는 후기르네상스 시대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예요.
펠리페 4세의 총애속에 그의 초상화를 
전담한 궁정화가로 잘 알려져있죠.
당대에는 편협한 지지를 얻었는데, 점차 
화가와 작가들에 의해 재발견,재평가되면서 
19세기말에 이르러서야 제자리를 찾았어요.  

고야,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달리등 
화가들에게  자극과 영감을 선사하고,  
특히 마네MANET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인상주의의 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미술애호가였던 펠리페 4세는 한눈에 재능을 
알아채고 그를 궁중화가로 임명한 이후 
 특혜를 안겨주고, 지속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은 
벨라스케스의 중요한 후원자예요.둘다 20대시절
처음 만났는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할께요.



Born in Seville, Andalucia, Spain.
안달루시아지방에서 태어난 벨라스케스는
어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어요.
출생당시 세비야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을 이룩한 살기좋은 도시였어요.
적잖은 재산을 가진 소귀족의 신분인 부친 
재능을 보이던 아들의 스승을 직접 간택했어요. 


Francisco de Herrera, a vigorous painter.
첫스승인  화가이자 판화가 프란시스코
 헤레라로부터 강모, 빳빳한 붓(brushes with
long bristles)의 사용법을 익혔어요.





<Kitchen Scene with the Supper in Emmaus 1618>
Oil on canvas, 55 x 118 cm
National Gallery of Ireland, Dublin
<Head Of A Girl 1618>
Chalk on paper 150 x 117 cm
Biblioteca Nacional, Madrid




when he was 12 years old, Velázquez began to 
serve as an apprentice under Francisco Pacheco
그의 스튜디오를 그만두고 만난 파체코는
  화가이자 시인으로서 문화적 소양을 함께
  익히도록 했어요. 덕분에 벨라스케스는
언어, 철학등에도 밝았고, 이미 20살때
 능수능란한 필법으로 걸작을 창작해냈어요.







<Head Of A Man 1616>
Oil on canvas,  36 x 40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Portrait Of A Man With A Goatee 1620-1622>
주름장식 깃이달린 옷을입은 남자의 초상화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이작품의 주인공이 Francisco Pacheco예요.
그는 12살의 벨라스케스는 6년간의 
도제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직업을 갖기위해 
13-14살때 도제수업을 듣는것이 관습이였어요.
또 후에 장인어른이 돼요. 제자의 재능을
유달리 아끼던 아버지를 지켜보며 딸도
호감을 갖게 되었나봐요. 19살 벨라스케스는
파체코가 인심좋게 후한 지참금을 쥐어준
16살 딸 후아나Juana Pacheco 
1618년 결혼후 곧 두딸을 얻었어요.






<The Immaculate Conception 1618>
무염 시태 /無染始胎
Oil on canvas, 135 x 102 cm
National Gallery, London


17세기 이탈리아와 스페인 화가들이
성모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즐겨그린 종교화 주제중 하나로
"원죄 없는 잉태"란 뜻이예요.

 성모마리아가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었다는
천주교 교리인데, 이 추상적 관념은
파체코Pacheco가 그의 저서[회화의 기술]
1621년 회화작품을 통해
"햇살 가득한 천국에서 순백의 옷을 입고
 별이 빛나는 왕관을 쓴채 초승달을 딛고
서서 기도하는 모습 "이라는 기준을 정립한
이후 많은 화가들에 의해 재현되었어요.
 이작품도 파체코의 작품과 매우 비슷해요.




<Christ in the House of Mary and Martha 1620>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온 그리스도
Oil on canvas, 60 x 103,5 cm
National Gallery, London


역시 종교화인데 교리를 일상에 절묘히 
결합시킨점과  등장인물의 정확하고 
논리적인 배치와 구성, 자연스러운 자세와 
인상등으로 인정받는 작품이예요.


<Adoration Of The Kings  1619 >
동방박사들의 경배
 oil on canvas 203 x 125 cm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마지막에 여러점 소개했지만, 사실 그가
남긴 종교화(religious painting)는 많지 않아요.
종교화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에 있는
<Christ on the Cross/Christ Crucified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632>와
네셔널 갤러리 The National Gallery에 있는
<Christ contemplated by the Christian Soul
그리스도와 기독교도의 영혼 1628-1629>
두점이예요.  <Adoration Of The Kings >는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초기작품으로서 ,
 종교지도자들과 친분이 두텁던

스승 파체코가 힘써준 덕분에
18세기까지 세비야의 산루이스(San Luis) 
예수회의 수련원에 걸려 있었어요.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