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7.

让·安东尼·华多 Jean-Antoine Watteau 장 앙투안 와토 (1.Gilles/ Claude Gillot/ -1707)


Jean-Antoine Watteau
장 앙투안 와토
(French l 1684 - 1721 l aged 36)
Movement : Rococo

<Gilles/Pierrot 1718-1719>
oil on canvas, 149 x 184 cm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Bequest of Dr. Louis La Caze, 1869

가끔 말과 글이 우리를 배신해도
그림과 노래로 위안받을 수 있으니
참 다행이예요.

아무렇지 않은척 쿨하게 넘기기엔
아직 심장이 너무 뜨거운 나이 아닌가
안쓰럽기도 하구요.
 언젠가 일어날 일인데..그래도 
한번겪었으니 다음엔 덜 아프겠죠 :)

특유의 로코코적인 세련미와 우하함으로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을 그린 낭만적인 몽상가, 
페트 갈랑트의 화가라 불리우는 와토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Gilles 질>이예요.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美를 추구해오던
 Watteau가 왕성한 창작의욕과 활동으로 
심화된 예술세계를 선사하던 성숙기에 
그린 것으로, '회화예술의 정점, 인간정신의 
가장 빛나는 표현'이라 극찬받은 작품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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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A sad clown
It may have been a sign for a café belonging
 to a former actor by the name of Belloni. 
The identity of the man dressed as a Pierrot
from the Italian comedy is, however, unknown
카페의 간판/공연 포스터였는지(a theatrical 
sign for a café or a fairground show?)
주문받아 제작한 것인지 임의로 그린건지
심지어 Gilles질의 모델이 누구인지, 
실존인물인지 상상속의 인물인지... 
당나귀와 배경속 인물들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은 해석들이 쏟아져나왔지만
정확히 밝혀진건 아무것도 없어요. 


This painting was formerly known 
by the title Gilles, but nowadays 
the title Pierrot is preferred
 as being closer to the theme of the work. 
처음엔 Gilles로 불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극중 인물들(the characters from the 
Commedia dell’Arte코메디아 델라르테)을 
등장시킨 작품의 테마에 따라
 Pierrot란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어요.


This portrait of a poetic, dreamy Pierrot is 
an exceptionally large painting for Watteau. 
실물크기에 가깝게 그려진 大作이예요.
 광대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Gilles이
파란 하늘을 등지고 홀로 서 있어요. 
상의는 너무 길고 펑퍼짐한데 반해
바지는 복숭아뼈도 보일만큼 짧으니까
귀여워서 웃음이 나요.
근데 표정은 마냥 웃을수 없게 만들죠...  


극속에선 연인들을 돕는 조력자 역할이며
원래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는데, 
와토의 그림속에선 꾸밈없는 쌩얼이예요 :)
순백의 옷은 때묻지 않은 천진난만함을
방심한듯 어리숙한 표정은 무방비상태,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능력도 기재도 
없는듯한 순진무구한 인상을 전해요.

학자들간에 Gilles은 이미 무대의 등장인물도, 
꿈속의 환영도 아니며, 와토의 감각과 몽상이 
빚어낸 보편적 인간의 한 전형(典型)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예요. 

 와토는 Gilles의 슬픈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Gilles은 와토 자신의 
모습이라 할수도 있을 거예요. 


Four stock characters can be identified ;
the doctor on his donkey, the lovers
Leandro and Isabella, and the captain.
배경속 인물들은 극속에 자주등장하는
 캐릭터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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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 belonged to (도미니크 비방 드농)
▷Dominique Vivant Denon , director of
the Napoleon Museum during the
 First Empire, before it was acquired
by Dr. Louis La Caze (루이 라 카즈),
a keen collector of 18th-century art.
Louis La Caze bequeathed his artworks
 to the Louvre in 1869, and they form
the basis of the museum’s collection
of 18th-century French painting.

Dr. Louis La Caze는 성공한 의사이자 
예술품 애호가였어요. 루브르에 Gilles을 
포함하여 렘브란트, 드가, 마네등
무려 583점의 작품을 선물했는데 이는
 루브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증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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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토의 생애生涯에 관해 알려진 바와
전해지는 자료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정보와 기록에 의거하여
추정할수 밖에 없어요.

이건 민감한 사항이지만 사실 ...
와토의 진작(眞作)인지 아닌지 논란이
분분한 작품도 있고 , 작품의 제작연도는
사실보다 추정에 가깝고,  작품제목도 후대의
판화업자나 수장가(收藏家)에 의해 임의로
 붙여진것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일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흔한데다 또 불가피한 일이니까,
좀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해요.
이부분에 관한 기재는 앞으로 생략할께요:)


와토는 벨기에와 인접한 지방
발랑시엔느Valenciennes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지붕 설치업자(roofer)여서
일찌기 그림을 접할수 있는 환경이었고,
고장의 화가(Jacques-Albert Gérin,
a local painter)로부터 초보적인
미술교육도 받은것으로 보여요.
자주 거리로 나가 광장에서 데생을 했다고 하니
 어릴때부터 화가의 꿈을 간직했으리라 짐작돼요.


Jean-Antoine's first artistic subjects
were charlatans selling quack remedies
 on the streets of Valenciennes.
그의 첫작품은 약품 행상인을 그린것이고
떠돌이 곡예사들도 즐겨 그렸어요.


Watteau left for Paris in 1702.
18살의 나이에 파리로 이주했어요.
노트르담 다리(at Pont Notre-Dame)의
어느 아틀리에에 취직해서 인기작품의
복제화 만드는일을 했어요
(making copies of popular genre paintings
 in the Flemish and Dutch tradition)

 It was in that period that he developed
 his characteristic sketchlike technique.
 열정이 충만한 때라 일 외에도
보이는것마다 사생寫生하여
스케치북엔 그림으로 가득했어요.
덕분에 데생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모사模寫화가에 불과한
스스로의 처지에 회의를 느끼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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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을 아끼는 후견인(後見人)들을
만나면서 한걸음 더 성장해 나가요.
첫만남은 클로드 질로Claude Gillot예요.

By 1705 he was employed as an assistant
by the painter ▷Claude Gillot, whose work
represented a reaction against the
turgid official art of Louis XIV's reign.

그는 화가이자 판화가,삽화가, 장식가였는데
와토에게 연극과 희극의 세계를 처음 알려줬어요.
또한 극적 허구만이 전할수 있는 감흥,
자유로운 교태와 재치에 눈뜰수 있게 했어요.
희극인들의 동작과 표정을 포착하는법도
 처음 익혔어요. 이는 평생동안
와토에게 중요한 영감을 준 소재가 돼요.

In Gillot's studio Watteau became
acquainted with the characters
 of the commedia dell'arte (its actors
 had been expelled from France in 1697),
 a favorite subject of Gillot's that would
 become one of Watteau's lifelong pas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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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시대의 개막>
● fête galante 페트 갈랑트 :
사랑의 향연 , 우아한 연회
● féte champêtre 페트 샹페트르 :
 전원의 연회

두번째 후견인 클로드 오드랑과의
만남과 로코코시대의 개막은
 다음편에서 이어갈께요 :)
<Cupid Disarmed 1715>
mythological painting
oil on canvas, 38 x 47 cm
Musée Condé, Chantilly, France
<The Feasts Of Venice 1717>
Genre: pastorale(田園曲)
oil on canvas 46 x 56 cm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The Embarkation For Cythera 1717>
 oil on canvas 194 x 129 cm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A Love Festival 1717>
 Rococo, pastorale
 oil on canvas 75 x 61 cm
<Satire On Physicians 1708-1709>
 oil on panel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The Marriage Contract 1712>
55 x 47 cm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The Monkey Sculptor 1710 >
allegorical painting
oil on canvas, 21 x 22 cm
 Musée des Beaux-Arts, Orléans, France
<Arlecchino Emperor In The Moon 1708>
Rococo, oil on canvas
musée des Beaux Arts, Nantes, France
<Cajoler 1707-1708>
illustration
 oil on panel 39 x 80 cm
Private Collection
<Faun 1707-1708>
Rococo, illustration
oil on panel, 39 x 87 cm
Private Collection
<The Bird Nester  1710>
 Rococo, pastorale
 oil on canvas, panel
18.7 x 23.17 cm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The Foursome 1713>
Rococo, pastorale
oil on canvas,  64.9 x 49.5 cm
<The Love Song 1717>
Rococo, pastorale
 oil on canvas 59.4 x 51.3 cm
National Gallery, London, UK




 My DeAr ^.^